"이미 와버린 미래"
대기업에서 이커머스 서비스 기획을 하다 스타트업으로 옮긴 A씨는 집에서 근무를 한다. 기획자로서 도전하고픈 꿈에 더 가까워지기 위한 것도 있지만 재택근무라는 업무 환경도 일자리를 옮기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의 단위가 직장에서 프로젝트 중심으로 바뀌면서 일하는 장소가 굳이 회사일 필요도, 대면이어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일에 대한 집중도와 전문성을 요구받기에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투자한다고 한다.
결혼 1개월차 B씨는 제주도에서 계속 신혼여행(?) 중이다. IT회사 개발자와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B씨 부부는 회사에서 마련해준 제주시 내 공유오피스를 이용하며 각자 업무도 보고, 나머지 시간은 둘 만의 취미인 수중 다이빙을 배우고 있다. 이른바 ‘워케이션(workcation)’이다.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함께 한다는 의미로, 해외 휴양지나 제주도 등 국내 관광지에서 업무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코로나19 ‘엔데믹’이 가까워지면서 IT기업들을 필두로 위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일과 일자리 방식이 업계 근무 트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실제 위 사례도 필자가 운영하는 유튜브채널 ‘T1530’에 출연한 분들의 이야기이다. 정보기술로 무장하고 전문화된 능력으로 일과 일자리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려는 그들과 함께하려면 기업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판교 테크노밸리의 중심 판교역 출입구 및 통로 벽에는 온통 구인광고로 도배돼있다. 인재를 확보하려는 기업들의 아이디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그 중 에서도 회사를 불문하고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조건이 ‘주 4일 재택근무제’이다. 토요일을 반휴일 근무로 시작했던 필자에게는 격세지감일 수밖에 없다.
일찍이 미국의 MIT경영대학원의 프로젝트 ‘21세기 조직 발명’을 주도했던 토마스 말론 석좌교수는 2005년 저서 ‘일의 미래’(The future of work)에서 미래의 기업조직을 상징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분권화’(Decentralization)를 키워드로 제시했었다. 그에 따르면 ‘통신비용의 절감과 기술 발전으로 의사결정권한을 조직 전체로 분산시킬 수 있게’ 되고, 이는 ‘중앙집권적인 지배체계를 느슨한 상하관계로 바꾸게 된다’라 했다. 아울러 ‘많은 일을 웹사이트를 통해 외주를 주게 되고, 모든 일을 조직이 전부 처리하지 않고 장기 프로젝트까지도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입찰에 부치게 될 것’이라 예견했다.
당시, 국내에 최초로 프리랜서 플랫폼을 도입해서 일과 일자리에 대한 변화의 흐름에 앞장섰던 한 사람으로서 그의 혜안에 무릎을 치며 공감을 하고, 한편으론 위로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기업 중심의 하청, 재하청의 수직관계는 견고했고 노동의 유연성은 사회적 합의를 요구하는 거시적인 의제였다. 분명히 다가올 미래이지만 언제 일지 확신할 수 없는 미래이기도 했다.
열대 저기압 태풍 ‘힌남노’가 밀어올린 고온다습한 기온에 청명한 가을 하늘이 뒤섞인 2022년 9월의 날씨처럼 4차 산업혁명의 파고와 코로나19 팬데믹은 쌍끌이로 그 미래를 당겨버렸다. 소설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의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게…”라는 말처럼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돼있다.
집은 쉬는 곳이고, 직장은 일하는 곳이고, 자동차는 이 두 곳을 빠르게 연결해주는 수단이었다. 이는 물리적인 일자리가 회사에 고정됐을 때 이야기이다. 이제는 집도 사무실이 되고 심지어 자동차도 사무실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선택권이 기업에서 개인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토마스 말론 교수는 이런 사람들을 ‘이랜서’(e-Lancer)라 명명하며 말했다. “21세기는 이랜서의 시대이다.”
오늘의 티는 NINA’s PARIS, 니나스 파리에서 만든 “쥬뗌므(Je t’aime)” 이다. “사랑해”라는 뜻을 가지고있다. 니나스 파리는 1672년에 시작된 기업이다. 너무나 향을 잘만들어서 마리 앙뜨와네뜨가 좋아했다고 한다. 니나스파리의 대표적인 차 이름이 ‘마리-앙뜨와네뜨’라고 할 정도이다. 오늘의 티인 “쥬뗌므”는 말 그대로 달콤하고 부드러운 바닐라향과 카라멜향이 가득 차 있는 홍차다.
프랑스에서 노트북으로 열심히 일을 하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저 멀리 에펠탑이 보인다. ‘아, 나는 지금 빠리에 있구나.’ 현실로 돌아오는 그때 문득 고국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난다. 쥬뗌므를 한 모금 마시고 생각에 잠긴다. 시차가 달라서 바로 전화는 못하고 그리운 이에게 “잘 지내지? 사랑해.”라고 카톡을 남긴다. 카톡에 함께 묻어 가는 향, 달콤하고도 부드러운 마음이 바로 “쥬뗌므”이다. 오늘 누가 그리워지시나요? “쮸뗌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으신가요?
한강을 바라보며 “차 한잔 하실래요? ” Would you like a cup of tea?
‘박우진의 T1530칼럼’은 국내 최초이자 최대 IT프리랜서 플랫폼사인 ㈜이랜서의 박우진 대표가 오후 3시 30분 애프터눈 티 타임에 오늘의 차와 함께 IT People과 Trend, 일과 생활에 대해 전문가의 경험과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칼럼입니다.
박 우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