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을 받는 사람, 월급을 만드는 사람”
점심 시간 선릉. 고층 빌딩을 병풍처럼 두르고 소나무 가지 사이로 시원스레 보이는 푸르른 하늘은 뉴욕시의 센트럴파크가 부럽지 않다. 삼삼오오 모여 산책하는 사람들, 벤치에 홀로 앉아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긴 사람, 감나무에 매달린 대봉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사람 등 저마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느라 한창이다. 그러고 보니 올 가을은 예년과 달리 긴 것 같아 짧아서 늘 아쉬웠던 마음을 달래준다.
하지만 가을의 풍요로움만 논하기엔 작금의 우리를 둘러싸고있는 경제 환경은 녹록치가 않다. 계속되는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으로 실질소득은 감소하고 있다. KDI에 따르면 내년도 우리 경제는 수출증가세가 크게 둔화되고 투자 부진도 지속되면서 세계경제 성장률을 밑도는 1.8%의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용시장 역시 수익성 악화와 자금시장 경색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이 채용규모 축소와 인력구조를 조정해 갈 가능성이 높아 한파가 예상된다. 구직자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우려되는데 기업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는 코로나가 촉발한 노동시장의 미스매치때문이기도 하다. 코로나 충격 이후 IT부문 중심으로 새롭게 생겨난 일자리는 소프트웨어 설계와 코딩 등의 스킬을 많이 요구하는데, 이것은 기존 취업자들이 보유한 능력과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현행 교육제도로 길러지는 인재와 기존 취업자의 재교육 시스템으로는 산업의 일자리 수급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프리랜서 채용에 주목하고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인건비 절감의 목적도 있지만, 기업에 필요한 전문성을 효율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구글은 2019년 기준으로 프리랜서와 계약직 비중이 전체 인력의 50%를 넘어섰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보고서는 개발직군이 집에서 일하는 경우와 회사에서 일하는 경우의 성과 차이가 없었다고 전한다. 필자가 운영하는 프리랜서 플랫폼을 이용하는 고객사 대상 설문조사에서도 독립적인 프로젝트 기반의 프리랜서 고용을 유지하거나 늘릴 계획이라고 답한 비율이 3분의2에 달하고, 그 이유로 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 유지를 꼽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국내외 많은 기업들이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고용의 유연함’과 ‘최고 인재 확보’라는 이점을 동시에 누리고자 프리랜서 고용을 늘리는 추세이다. 특히,뛰어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임금 인상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는 현재 상황에서 스타트업이나 중소벤처기업은 대기업 또는 글로벌 기업 근무 경력을 보유한 인재를 풀타임 정규직원으로 채용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들의 스킬 및 포트폴리오에 비례해서 연봉 수준도 상승할 것이므로, 적은 예산으로는 이러한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에서 원하는 스킬과 경쟁력 있는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프리랜서를 고용할 수는 있다. 이를 통해 해당 분야 최고 수준의 프리랜서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그들의 경험 및 노하우를 기업의 자산으로 만들 수 있다.
월급을 받는 사람’ 보다 ‘월급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비중도 더 높아지고 있다. 급여는 ‘받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며, ‘자신의 연 수입은 남이 아닌 자신이 결정’하는 프리랜서의 전성시대가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프리랜서(Freelancer) 뜻은 기업이나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 개별적인 계약에 의해 일하는 자유직업인을 지칭하며, 여기서 한 개념 더 나아가 IT 기술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일하는 ‘21세기형 전문가’를 ‘이랜서(Elancer)’라 한다.
앞에 쓴 칼럼에서도 얘기했듯이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 팬데믹의 파고는 우리 사회를 분권화, 개인화된 사회로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회사나 단체 등의 조직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개인 자신이 브랜드가 되고 상품이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들은 누구나 유형이건 무형이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팔고 살아야 한다. 산업 경쟁에서 개인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있는 우리는 ‘월급을 받는 사람’에서 머물러 있을건지 ‘월급을 만드는 사람’으로 나아갈지 선택지를 받아드리고 있다.
가을을 풍요의 계절로 흔히 말하는 ‘천고마비’도 중국 고대사에서는 ‘공포의 계절’을 뜻했다고 한다. 가을은 농사짓는 민족에게는 수확의 계절이지만 유목민족에게는 말의 전투력이 극강해지는 계절이기도 하였다. 그러니 하늘이 드높아지고 말이 살찌는 가을이 오면 유목민족들의 침입을 경계하고 대비하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한다.
이후 중국의 힘이 압도하면서부터 그 원뜻은 사라지고 풍요와 여유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한다. 변화의 흐름을 잘 읽고 준비를 잘 하는 자만이 풍요를 누릴 수있다는 생각과 함께 늦은 가을를 떠나보낸다.
오늘의 티는 가을에 어울리는 홍차이다. 다들 알고 있듯이 홍차는 미국을 탄생시킨 단초이다. 1773년 보스턴항에서 영국의 홍차를 모두 바다에 던져버린 보스턴차사건으로 미국의 독립전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필자는 가을하면 떠오르는 도시는 뉴욕이다. 왜냐하면 센트럴파크의 단풍이 무척 아름답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물든 나뭇잎들을 바라보며 마시는 차로 뉴욕브렉퍼스트티를 권한다. 풀바디의 홍차이다. 아쌈의 강한 향과 함께 바닐라, 시나몬, 메이플시럽의 달콤한 향이 함께 어울러진 차이다. 아침을 따뜻하게 만들고 오후에는 하루를 달콤하게 만든다.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의 아침, 홍차를 텀블러에 들고 잰걸음으로 회색의 도시를 지나가다 문득 옆을 바라보면 찬란한 단풍에 물든 센트럴파크가 눈에 확 들어온다. 잠시 걸음을 멈춘다. 이 때 나의 눈동자에 비친 단풍이 한 모금 차와 함께 내 마음으로 들어온다.
“Would you like a cup of tea?
홍차 한 잔…"
‘T1530박우진칼럼’은 국내 최초이자 최대 IT 프리랜서 플랫폼사인 ㈜이랜서의 박우진 대표가 오후 3시 30분 애프터눈 티 타임에 오늘의 차와 함께 IT People과 Trend, 일과 생활에 대해 프리랜서 전문가의 경험과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칼럼입니다.
박 우 진